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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정기가 서린 우두산

겨스 2021. 4. 19. 17:31

내가 중학교 시절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춘천의 우두산을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선조의 태생지라 일본 신사를 지으려고 했는데, 한 노인네(아마 산신령인 듯)가 나타나 타일러서 무산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소가 무덤을 밟고 지나가도 다음 날이면 다시 솟아오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농초 朴文基貊耳에 의하면, "공자께서 민족의 구분은 서방 민족은 융()이라 했고, 화산(華山)에서 일어난 민족을 화인(華人)이라 했으며, 중토에서 일어난 민족을 하인(夏人)이라 했다. 동방 민족을 이인(夷人)이라 했고, 북방 민족을 적인(狄人)이라 했으면, 남방인을 만인(蠻人)이라 칭하여, 중국인을 화하(華夏)또는 중화(中華)라 했고, 우리 민족을 이적(夷狄) 또는 이맥(夷貊), 또 구이(九夷)라 칭했다. 상고시대에 백두산 주위에 살았던 서민층의 맥인(貊人)들이 남하(南下)하여 지금의 허베이(河北),(河北), 산동(山東), 강소(江蘇), 안휘성(安徽省) 등에 분포하여 강대한 세력을 이루고 지냈으며, 뒷날 지배층의 맥인들은 지금의 강원도(江原道)로 남하하여 살았으니, 이들은 신라 초기까지 나라를 유지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삼국사기에 이렇게 이르고 있다. “유리 이사금(박혁거세 거서간의 손자) 179월에 화려(華麗:지금의 덕원德原) 불내(不耐: 지금의 안변安邊) 두 고을 사람들이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북쪽 국경을 침범할 제 맥국(貊國)의 거수(渠帥:군장)가 군사를 거느리고 하서(河西:지금의 강릉)에서 이를 가로막고 격파하여 패주 시키니,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우호를 맺다.

이 땅에 남하한 맥인들의 도읍지는 우수주(牛首州)이니, 지금의 강원도 춘천(春川)이다. ‘우수(牛首)’란 말은 소머리를 가리킴이니, 지배층의 맥인들이 웅거 했던 곳이란 뜻이다. 지금까지도 지위가 높은 사람을 우두머리라고 칭하는 것은 여기에서 기인한 듯하다."

북쪽의 옥산포 이북 쪽이 맥국이라고 한다. 샘밭의 고인돌군과 레고랜드를 짓기 위해 중도에 기초 공사하다 발견된 청동기 유적에서 구석기 유적까지가 이를 뒷받침할 것이다. 아무튼 소양 국민학교 다닐 때, 소풍을 가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는 교련복을 입고 행군 소풍을 충렬탑까지 갔던 기억도 있다. 오늘 본 것은 6.25 전쟁 시, 이곳에서 북한군을 저지 못했으면 우리나라는 공산화되고 말았을 것을 우두산과 소양교에서 저지하여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이곳은 조선 고종 때, 유사시 임금의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한 춘천 이궁(離宮)의 조양루를 일제시대 때, 우두산에 옮겨 놓은 것을 다시 강원도청 청사로 옮기고 우두정을 지어 놓았다.  안내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산 밑의 길 건너편은 소양댐의 배수된 물이 너무 차가워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온수 지를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