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나무의 재배는 많은 노동력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1~2천 평의 규모라면 한두 사람이 여가 시간을 이용해서 재배가 가능하다. 논산의 고종범씨를 통해 그 결과를 소개한다.
두릅재배의 시작
농협에서 근무하는 고종범씨가 두릅나무를 알게 된 것은 12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직장의 동료 집에서 두릅나무를 보게 되었는데 봄철에 먹음직스럽게 올라오는 두릅순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그때부터 두릅나무 재배를 결심하게 되었다. 우선 고씨는 두릅나무의 재배 생리를 알기 위해 주말마다 어김없이 인근의 야산으로 가 두릅나무를 찾게 되었다. 그때부터 뿌리에서 순이 올라오는 작은 두릅나무를 몇 개씩 캐다가 뒷밭에 심기 시작하여 일종의 시험재배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2~3년을 재배하다 보니 싹이 나오는 시기, 순의 모양, 색깔, 생장하는 형태 등 두릅나무의 특성이나 재배 생리를 점차 터득하게 되었다. 한 번은 여름철 장마 후에 뒷밭에 물이 질펀하게 고이게 되었는데 멀쩡하게 잘 자라던 두릅나무가 잎이 시들해지면서 모두 죽어 가는 것을 보고 두릅나무의 재배는 무엇보다 배수관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형태적인 차이는 물론 맛이나 향기 등이 각양각색인 서로 다른 특성의 여러 두릅나무를 모으는 재미가 점점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두릅나무와 친숙해지면서 익히게 된 재배 생리 및 여러 가지 특성을 토대로 하여 그 다음부터는 순이 굵게 나오고, 향기가 좋으며, 노지에 재배할 때 생장이 빠른 개체만을 계속 골라서 재배를 하게 되었다. 이 방법은 나무의 육종에서 전통적으로 이용해 온 이른바 ‘선발육종’의 한 방법이라 말할 수 있는데 고씨는 이미 두릅나무를 대상으로 선발육종을 몇 년 간 지속해 온 셈이다. 처음에는 자신과 식구들끼리 좋아하는 고급 산채를 별미로 먹는 재미로 시작을 하여 이제는 좋은 두릅나무를 선발하여 재배하는 육종가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좋은 두릅나무의 선발
고씨가 재배하는 두릅나무는 어림잡아 10가지가 넘는다. 모두 논산지역에서 모은 것이지만 개체에 따라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 나라에 자생하는 두릅나무는 기본종으로 4종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지만 실제로 산에 가보면 국부적인 지역에 따라서도 여러 가지의 변종이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두릅나무의 외형적인 특성은 줄기에 붙어 있는 가시의 많고 적음에 있다. 두릅나무는 어릴 때 대체로 가시가 많고 어른나무가 되면서 점차 가시가 탈락되거나 적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어떤 개체는 어릴 때부터 가시가 거의 없는 민두릅의 계통도 발견된다. 또한 새순이 나오는 모양이나 시기도 각양의 차이가 있다. 고씨는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두릅나무를 모두 모아 재배하면서 그 가운데 생장이 좋고 무엇보다 순이 굵고 먹음직스러우며 향기가 좋은 개체를 계속 골라서 심고, 생장이 나쁘고 두릅순의 가치가 적다고 보여지는 개체는 점차 제거하였다. 이렇게 5년쯤 계속하다 보니 포지에는 비교적 좋은 두릅나무 개체들로만 구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두릅나무는 기존의 두릅나무보다 줄기에 가시가 적고, 전정 후 생장이 빠르며, 또한 정아가 크고 측아도 비교적 큰 장점이 있다고 고씨는 설명한다. 따라서 정아를 수확한 후 3회 정도 곁순(측아)의 생산이 가능하여 다수확의 측면에서도 유리한 개체라는 것이다. 곁순을 3회 정도 수확한 다음에는 밑동을 10cm 가량 남기고 절단하여 매년 세력이 좋은 줄기가 3~4개씩 올라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고씨는 이 두릅나무를 집 뒤의 포지 300여 평에 모두 식재하고 있다. 물 빠짐이 나쁜 곳에서는 여름에 두릅나무를 모두 죽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고씨는 밭이랑을 높게 두어 배수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한편 필자는 3년 전에 고씨가 선발한 우량한 개체를 몇 본 분양받아서 조직배양의 방법으로 묘목을 만든 다음 임목육종부의 구내 포지에 시험재배를 하였다. 품종의 이름은 고씨의 고향을 본떠서 논산 1호로 명명하였다. 시험재배 결과 이 두릅나무는 봄에 새순이 비교적 늦게 출하하는 만생종이었고, 가시가 일반 두릅나무보다 적으며, 생장이 빠르고 정아는 물론 측아가 비대해서 순의 수확량이 다른 개체보다 우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조금만 더 개량한다면 좋은 두릅나무 품종으로도 보급이 가능한 개체로 생각되었다.
순의 수확 및 판매
다른 농산물도 마찬가지이지만 두릅순의 판매 역시 언제나 어려운 부분이다. 더욱이 산채로 산물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변질되면 판매가 어렵고 유통 기한도 길게 잡아야 일주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씨는 처음부터 매매를 목적으로 두릅나무를 재배하지 않은 만큼 두릅순의 판로를 크게 염려하지 않고 있다. 평소에 좋아하는 두릅순을 자신이 직접 재배해서 채취하는 재미가 더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자연산으로 두릅순을 수확하고 이에 대한 구매자의 선호도가 좋기 때문에 아직은 판로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고씨는 농협을 통해서 다른 농산물과 함께 수확한 두릅순을 그저 몇 박스씩 안양과 대전 등으로 출하시키고 있으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폐경지나 산간 유휴지 등에 두릅나무 재배를 확대하여 자연산 두릅순을 더 많이 생산할 필요가 있다고 고씨는 주장한다. 고씨는 ‘계룡산 산두릅’이란 명칭으로 4kg 박스 포장으로 매년 70∼90박스를 출하시키고 있다. 가격의 등락이 조금은 있지만 4kg 박스당 5만 원선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점
두릅나무의 재배는 여름철의 배수관리에 유의한다면 기타의 병해충이 심각하지 않아서 적은 노동력으로 집약재배가 가능한 작목이다. 그러나 고씨에게 있어서 두릅재배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재배상의 문제가 아닌 봄철마다 순을 잘라 가는 도둑 방지에 있다고 한다. 두릅순을 도둑질해 가는 세상! 이런 얘기는 사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문제는 심각한 상태라고 고씨는 하소연한다. 처음에는 두릅순이 좋아서 좀 따가려니 했는데 요즈음에는 외지에서 아예 차까지 몰고 와서 야산에 심은 것을 계획적으로 잘라 간다고 하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삼포를 덮쳐 수년간 애지중지 길러 온 인삼을 도둑질한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이제는 두릅순까지 훔쳐 가는 세상이 되었다. 정말 세상 인심이 각박해진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제발 이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OECD에 가입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간다고 떠들어대고, 월드컵을 유치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우리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씨는 특히 올해에 많은 양을 도둑 맞아 예년의 절반 정도도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튼 두릅재배의 어려움이 재배상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도둑의 문제라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시화로, 산업화로 젊은 일손은 점차 고향을 떠나고 그나마 고향 산천을 지키며 소박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노령의 농민들이 피와 땀으로 얻은 소산물을 그렇게 쉽게 도둑질해 간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하기야 필자는 직장의 구내 포지에서 두릅나무를 시험재배하고 있는데 이것에도 손을 대는 몰염치한 인간이 있다. 품종별로 구분하여 표찰까지 붙여놓은 두릅나무에 손을 대는 지경이니 고씨의 고충이 어떠한지를 이해할 것 같다.
맺음말
고씨는 몸에 당뇨가 있어 두릅 뿌리를 달여서 먹고 지내고 있다. 지병을 치료하는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몸에 배어 있는 두릅나무의 사랑 때문으로 보인다. 두릅나무의 뿌리가 당뇨에 좋다는 것은 여러 한방의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고, 이 밖에도 해열, 진정제 등 여러 질병의 치료제나 보강제로 이용되어 왔음을 볼 수 있다. 고씨는 집 뒤의 포지에 300여 평, 그리고 인근 야산에 700여 평의 두릅나무를 재배하여 전체 1,000여 평을 재배하고 있다. 자연산으로 두릅순을 채취하여 매년 3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순의 채취는 1개월이면 충분하고 기타 작업이래야 여름철에 배수관리에 유의하고 잡초가 지나칠 경우 그것을 제거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이 수익금은 노동력에 비해 적지 않은 돈이라 할 수 있다. 그냥 취미 삼아 하는 일이고, 단기간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하는 일을 통해 이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두릅재배는 해볼 만한 일이 아니겠냐는 고씨의 설명이다. 좀더 재배지를 확대하여 일할 수도 있지만 여가 시간을 이용하는 일인 만큼 더 이상의 재배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년 봄이면 자손들에게 무공해 두릅순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 아니겠냐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식 사랑 또한 지극한 부모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필자가 그곳을 방문한 날은 오랜만에 봄비가 장대비로 내려서 우산을 받쳐들고 사진을 찍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비를 맞으며 수확한 두릅순이 조금이라도 변질될까봐 두 부부가 다소곳이 앉아 바쁘게 순을 고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젠 자식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난 허전한 자리에 두릅재배를 통한 노부부의 사랑스런 손길이 새록새록 쌓여 감을 엿볼 수 있었다. |